요리

호두 소스 스파게티 Spaghetti alla Salsa di Noci

mgchem 2023. 5. 29. 22:37

 스파게티 건면이 집에 많다고 하여 스파게티를 해보기로 했다. 책을 쭉 넘겨보던 중 생소한 음식, '호두 소스 스파게티'가 눈에 띄었다. 호두로 소스를 만드는 것도 생소한데 거기에 스파게티를? 마침 집에 대부분의 재료가 있었기에 대망의 첫 요리는 호두 소스 스파게티로 결정. 호두 소스는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주의 전통 레시피 중 하나이다.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로 과채가 많이 자라지 않지만 호두, 올리브 등의 작물은 잘 자라서 이를 활용한 요리가 발전했다고 한다.

 

 참고한 책 <실버 스푼 클래식>(내돈내산!!)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리 과정은 사진 없이 글로만 적혀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완성된 요리의 사진은 페이지 하나에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어 내가 잘 따라왔는지 얼추 확인이 가능하다. 책의 레시피와, 집에 있는 재료로 '적당히' 대체하여 실제 사용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호두 소스 스파게티(카펠리니)

 2인분 기준(책은 4인분 기준. 아래 재료 양은 책 레시피의 절반)

호두 40g → 특별한 지시가 없어서 호두 분태 팩으로 파는 제품 사용
설탕 1자밤(≒꼬집) → 마스코바도 설탕으로 대체
갓 갈아 낸 너트메그(육두구) 1자밤 → 육두구를 향신료 무역 배운 이후 처음 들었다. 집에 있을 리 없으니 생략
올리브기름 100ml
생크림 1큰술
스파게티 건면 175g → 집에 있던 면이 카펠리니였다. 괜찮겠지 하며 알만도 카펠리니 건면 200g 사용
버터 10g
생빵가루 20g → 멀쩡한 바게트라도 부수어 가루를 내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오뚜기 빵가루 사용
소금
갓 갈아 낸 파르마지아노 치즈 → 피자에 뿌려먹는 초록색 통 파마산 치즈 사용

 

 현실과의 타협 끝에 어떻게든 재료 공수를 완료했다.

 다음은 호두 소스를 만든다. 호두 소스를 만드는 동안은 느긋하지만 면을 삶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급격하게 바빠지니 - 난 그러지 못했지만 - 신속하고 야무지게 움직여야 한다.

 

호두 소스

1. 끓는 물에 호두를 넣고 몇 분 데친 뒤 건져 껍질을 문질러 벗겨 낸다.
2. 호두를 곱게 다져 그릇에 설탕, 너트메그와 함께 담는다.
3. 올리브기름을 천천히 흘려 넣어 섞은 뒤 소금으로 간한다.
4. 더 풍성하고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내려면 소스에 생크림 1큰술을 더한다.

 

 호두라고는 생 호두만 우적우적 씹어먹어 본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준 부분이다. 호두를 데치는 것도 처음이고 호두 알맹이 표면에 껍질을 제거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몇 분이면 한 자릿수니까 중앙값인 5분을 데쳤다. 견과류 색 물이 우러나오고 5분이 지나 체로 건져냈다. 덜 데친 건지 껍질이 쉽게 벗겨지지 않아 손톱을 세워 일일이 벗겨냈다. 답이 없겠다 싶어 데친 호두를 물에 불려두고 하나씩 꺼내서 겨우 벗겨냈다. 다음에는 10분 정도로 오래 데쳐도 될 듯하다.

 

 식칼 손잡이를 세워서 호두를 다졌다. 호두 소스 스파게티가 꽤나 이름난 요리인 것 같은데 동영상이라도 찾아보고 할 걸 싶다. 호두를 다지기보다는 빻다가 호두 기름으로 흥건한 도마와 칼 손잡이를 보았다. 이때부터 느낌이 싸했지만 이미 늦었다. 눈에 걸리는 큰 호두 알갱이라도 지그시 눌러 으깨며 다진 호두와 큰 차이 없기를 바랐다. 다음에는 칼 옆면으로 하든 믹서기로 하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집에서 백설탕을 거의 쓰지 않아 마스코바도 설탕을 한 꼬집 넣었다. 자밤이라는 단위를 처음 들어서 찾아봤더니

자밤 :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 (출처 : 국립국어원)

 

이라고 한다. 오히려 '꼬집'이 신조어에 가깝고 자밤이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지식이 늘었다! 여하튼 너트메그는 없으니 생략하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한 숟가락씩 천천히 넣어 섞었다. 면 삶을 때 소금물에 삶으니 소금은 두 꼬집 정도만 넣어 잘 섞어주었다.

 

 완성된 호두 소스는 생각보다 꾸덕한 느낌이다. 호두의 향도 나지만 올리브 오일의 향이 호두를 덮었다. 호두가 완전히 다져지지 않아서인지 올리브 오일이 자꾸 분리되었다. 긴급 조치로 면 삶는 중간중간 섞어주며 진행하였다.

 

면 삶기부터 완성까지

1. 끓는 소금물에 스파게티를 넣고 알 덴테로 삶는다.
2. 면을 삶는 사이 프라이팬을 불에 올려 버터를 넣고 녹인다.
3. 빵가루를 더해 계속 뒤적이며 노릇해질 때까지 몇 분 볶는다.
4. 면수를 따라 버리고 빵가루를 볶은 팬에 스파게티를 넣은 뒤 불에 올려 2분 버무린다.
5. 호두 소스를 팬에 넣고 섞는다.
6. 파스타를 따뜻한 접시에 담아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솔솔 뿌리고 바로 낸다.

 

 알 덴테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이 없고, 카펠리니를 사용해 보는 건 아예 처음이다. 포장지에 3~4분으로 적혀있어서 3분에 불을 내렸다. 체를 받쳐 면수를 버리고 버터에 볶은 빵가루와 버무렸다. 최대한 약한 불로 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오래 지체된 건지 달군 철판에 물 튈 때처럼 불길한 치익 소리가 났다. 빵가루와 버무리는데 손이 빠르지 않다면 면수 약간을 남겨서 유예시간을 벌었어야 했나?

 

 실시간으로 분리되고 있는 호두 소스를 팬에 넣고 막 섞었다. 소스가 오일 베이스인데 면도 가는 면이다 보니 중식 볶음면을 넘어 튀긴 면 요리를 만드는 느낌이었다. 불을 너무 세게 한 걸까? 점점 바삭해지는 면을 보며 최대한 빠르게 면과 소스를 자장면 비비듯이 섞었다. 뒤늦게 생크림을 소스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크림 1큰술을 더해서 조금 더 섞어주었다. 비주얼을 조금이나마 살리기 위해 면을 가운데로 모으고, 흩어진 호두 알갱이를 그 위에 얹은 뒤 파마산 치즈로 마무리.

 

 당시에는 블로그에 요리 글을 게시하게 될 줄 몰랐다. 어차피 손이 느려 과정샷은 찍을 엄두도 못 냈을 터, 얼추 책과 비슷하게 나온 결과 사진이라도 게시한다.

호두 소스 카펠리니. 맛있다며 먹어준 동생에게 큰 감사를 표한다.

 


 

자체 평가 및 후기

 호두의 향이 굉장히 강했다. 호두 소스는 올리브 오일의 향이 덮었지만 다행히 완성된 요리에서는 호두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 문제는 정말 호두의 고소한 맛밖에 나지 않았다는 점? 다른 요리 후기에서는 너트메그가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한 경우도 있었는데, 넣지 못해 조금 아쉽다.

 

 또한 마스코바도 설탕이 일반 백설탕보다 당도가 약한 점을 고려하지 않아서 그런지, 단맛이 나다 말았다. 원래는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고 한다. 책의 레시피와 다르게 생크림을 소스와 따로 넣었는데 특별히 도드라지지는 않았다.

 

 맛과 별개로 식감이 좋았다. 볶은 빵가루를 사용해 먹는 중간중간 바삭하게 씹히는 알갱이를 만들었다. 호두를 완전히 잘게 다지지 않은 것도 묘한 상승효과를 일으켜 더 좋은 식감을 만들었다. 그래도 다음에는 껍질 벗긴 호두를 일일이 다지지 말고 믹서기에 갈아서 준비하자. 마지막에 접시에 담고 호두 분태를 적당히 다져서 뿌리는 것으로 식감과 비주얼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스파게티 면 대신 카펠리니 면을 사용한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소스와 면을 버무리는 동안 불이 너무 강했는지, 스파게티 면을 쓰지 않은 문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가느다란 면 특유의 하늘하늘한 식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식의 튀긴 면만큼은 아니지만, 튀기다 만듯한 다소 뻣뻣한 식감이 어색했다.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원래 만들고자 했던 호두 소스 스파게티 대신 호두 소스 카펠리니를 만들어 보았다. 호두 껍질 벗기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재료 준비만 30분 정도가 걸렸지만, 실제 조리 시간은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외출 뒤 돌아와서 만들기 시작하니 늦은 저녁이 되었다. 원래 오일 파스타와 어떤 주류가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는 길에 내 최애인 매화수를 두 병 사 왔다.

오일 파스타와 달달한 매화수가 어울릴까? 사실 마시고 싶어서 사왔다.
항상 저 하트 만들려고 두 병씩 산다. / 집에 있던 소금빵으로 소스까지 싹 긁어먹었다.

 솔직히 오일 파스타와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매화수는 그냥 내가 좋아해서... 맛있었다. 주류를 곁들이니 느끼함이 물릴 때쯤 싹 씻어주는 느낌이라 좋았다. 간단하게 둘이서 차려먹는 식사에 와인까지 대동하기 조금 그렇기도 해서 와인은 구매하지 않았다.

 

 집에 소금빵이 남아있길래 면을 다 먹고 남은 호두 소스와 함께 먹었는데, 호두 소스가 빵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금빵 자체도 기름지지만 짠맛 덕분에 기름진 호두 소스에 찍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뭔가 많이 한 것 같지만 요리 과정을 보면 몇 단계 거치지 않았다. 조리가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면을 삶아 소스와 빠르게 버무려서 내는 음식이다. 호두 껍질을 제거하는 준비 과정이 귀찮을 수 있으나 껍질이 들어가면 약간 떫은맛이 난다고 하니 웬만하면 레시피를 따르자. 한껏 기분 낸 자리에서 대접하기보다는, '호두 소스'에 갸우뚱하는 지인이나 가족에게 해주기 좋을 것 같다.

 

 다음에 어떤 요리를 해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과정샷도 함께 담아보고 싶다.